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들녘(코기토)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 하자면 서술 트릭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범인이 누구인가 같은 전통적인 추리 소설과는 달리 작가가 독자에게 어떤 함정을 파놓았는가를 즐기는 소설이 미스터리의 한 장르로서 당당하게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작가가 독자에게 함정을 파는데 있어서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켜져야 할 룰이 있고, 그 중 하나는 당연하지만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화자가 독자에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화자조차 다른 등장인물에게 속을 수도 있는 것이고, 좀 더 아슬아슬하게는 화자의 정신상태의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설정함으로서 화자를 독자가 100% 믿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서술 트릭에 있어서 전통적인 미스터리가 주는 퍼즐 풀이의 재미보다는, 반전에 집착해서 작가가 독자를 무리하게 이기려 드는 작품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적으면 이 책은 그런 문제가 있는 작품이구나라고 생각을 하시겠습니다만, 이 책은 매우 미묘하게 경계선에 걸쳐 있어서 판단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이라 생각합니다. 좋게 평가해주기에는 납득할 수 없고, 나쁘게 평가하기에는 좀 아까운 작품이군요. 미스터리가 아니라 스릴러 내지 서스펜스로 딱지가 붙여지도록 쓰여졌다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추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는 소설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퍼즐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 떨어진다고 제가 멋대로 생각하는 - 영화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걸 영상화할 경우 진짜로 관객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뭐, 어떤 천재 감독이 나타나서 제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낼 가능성이 0%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 나름의 결론을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다가 결말에서 실망하는 책이었습니다. 좋은 평가를 얻는 것은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 100만부가 팔렸다는 사실은 잘 이해가 안 가는 책입니다. 적어도 저는 남들에게 결코 추천할 수 없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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