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책/소설 2007. 3. 22. 23:50
13계단 - 10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황금가지

13계단이라는 제목에 끌려 충동적으로 고른 책이었습니다만, 이게 대박이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읽은 소설중에서 다섯손가락안에 확실히 들어갈 책입니다.

참고로 이 제목에 끌린 이유는  戯言使い -  한국 번역본에는 '헛소리꾼'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이 번역은 skill이라는 느낌이 안들어서 개인적으로 불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서 그냥 일본어로 표기했습니다. - 시리즈 중의 ネコソギラジカル (上) 十三階段 때문이었습니다. 읽어본 결과 내용적으로는 별로 관계가 없었습니다만.

스토리를 한줄 요약하자면, "가석방된 상해치사 전과자와 은퇴한 교도관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구해내기 위하여 7년전의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는 이야기"입니다. 13계단이라는 것은 예전의 일본 교수대는 13계단을 밟고 올라갔다고 하고, 현재는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서 13번의 결제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두가지가 13으로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겠습니다만, 숫자가 하필 13인지라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우선 뭐니뭐니해도 작가의 필력이 탁월합니다. 30페이지 정도만 읽고 나면 벌써 이 책은 매우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영화 쪽 일을 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내용에 별로 군더더기가 없이 이야기가 잘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두시간 짜리 영화에 쏙 들어갈 정도로 짧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이 책 일본에서 영화화도 되어있더군요.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작가가 만족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재판 제도, 사형 제도에 대한 의문이라는 무거운 화두를 제대로 던지면서도 오락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훌륭합니다. 게다가 작가가 원래 법조계의 일을 하던 사람도 아닌데 자료 조사만으로 이렇게 꼼꼼한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이 책의 일본판에는 책 뒤에 참고자료 목록이 잔뜩 적혀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재판 제도, 사형 제도라는 추리소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화두를 선택했다는 점도 훌륭합니다. 사실은 화두가 먼저고 소재가 나중에 선택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스릴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의 추리 소설이라는 것은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같이 추리를 해나가서 범인이 밝혀지기 점에 독자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작가와 머리 싸움을 하는 장르인데,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약합니다. 뭐, 장르라는건 부르기 나름이기는 합니다만.

이책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에필로그에 좀 사족같은 느낌이 드는 이야기가 붙어있다는 것인데, 화두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별로 지적할 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강력히 추천해드리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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