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 했습니다.

제가 뭐 슈로대 매니아라고 할만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젠 슈로대를 졸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도 휴대기로 나오는 시리즈는 계속 플레이할 것 같습니다만. ^^;


알파에서 갈아엎고 나서는 연출이 퀀텀점프한 슈로대 시리즈입니다만,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연출 과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강약이 없다는 겁니다. 모든 공격을 최대한 멋있고 화려하게 하려고 하고 있는데, 문제는 시간입니다. 한번 보고 말 것이라면 당연히 그 한번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여러번 보는 것이라면 질리지 않고 피곤하지 않게 되도록 충분히 배려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주 쓰는 공격은 짧게 하고, 기력 등의 제한으로 자주 쓰지 못하는 공격은 좀 길더라도 멋지게 해서 대비가 되어야 강한 공격에 대한 만족감도 더 올라갈텐데, 이건 다들 기니까 전투가 지루해집니다.

특히 전투가 길어진 요인 중의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예전 시리즈에서는 1칸 공격이었던 종류의 공격들이 2~3칸으로 늘어나면서 공격 모션 전에 이동 모션이 추가되었다는 점인데, 이건 아마도 1칸 공격 위주여서 활용하기 힘들던 메카의 팬들을 배려한 고육지책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제가 추측한 의도가 맞다면 의도는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나, 이걸 너무 남발해서 전체적으로 템포가 나빠진 점은 비난받아서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접근은 각 메카 간의 특성 차이를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캐릭터 게임인 슈로대에서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때리기 전에 열심히 달려갑니다.

파계편 이전에 플레이한 슈로대가 MX와 W라서 최신의 흐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간만에 파계편을 플레이하면서 의아해했던게 적들의 과잉 연출이었습니다. 특히 차원수는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듯한 현란한 이펙트를 포함해서 너무 과했습니다. 물론 스토리의 축이 되는 계열이지만, 그런 만큼 전투 빈도가 높으므로 적절히 절제해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가 원하는 건 멋지게 적을 패는 것이지, 멋지게 나를 패는 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스급이라면 어느 정도 멋질 필요가 있습니다만, 이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는 멋진' 유저를 위한 장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놀랐던 것 또 하나는 초탄이 빗나가고 2탄 내지는 3탄이 명중하는 연출입니다. 이거 처음 한번은 두근두근합니다만,  딱 한번 뿐입니다. 그리고 슈로대에서는 그걸 수백번 봐야 합니다. 그러면 단지 쓸데없이 전투 시간이 늘어날 뿐이지요. 특히 주인공의 사격 보정 연출은 최악입니다. 제일 많이 쓰는게 주인공인데 그렇게 전투를 길게 만들면 안되죠.
대사는 원샷킬이나, 실제로는 3발째. 이 뭐 병신같은...

공격/피격 대사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급적 전투를 보고 싶지만, 그걸 위해서 매번 전투를 보기에는 제 인내심을 넘어버린 연출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불평하고 싶은 것은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 유닛들이 등장하는 공격입니다. 일부 유닛의 공격 중에는 'XX부대 공격'식의 이름이 붙은 공격이 있는데, 이걸 보면 뜬금없이 존재하지 않던 유닛들이 공격에 참가합니다. 이건 사람들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게 다르겠지만,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요소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단쿠가 노바도 이글만 출격한 상태에서 뜬금없이 합체를 합니다. 차라리 합체한 상태에서 출격하고 분리가 안되는 정도라면 납득하겠는데, 없는 유닛이랑 합체하는 건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전투 연출의 과도한 길이와 강약이 없음에 대해서 불평을 해대었는데, 잘한 점도 물론 있습니다. 같은 무기를 지상 유닛/공중 유닛에 대해서 사용할 때 연출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나, 적을 격추했을 때 약간의 연출이 추가되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적을 격추했을 때 추가되는 연출은 평소 전투 시에는 전투 시간이 줄어들고, 격추시에는 만족감을 높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도 옛날만큼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슈로대의 재미 하나는 여러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어떻게 하나로 합치느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완전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일단 차원진동에 너무 안이하게 기대었다는 점이 실패요인 하나인 것 같고, 또 하나는 근본적으로 스토리 합성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 합성의 난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우선 참전 작품 수가 많은데다가, 루루슈나 더블오, 그렌라간 같은 세계 설정의 개성이 너무 강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참전 작품을 2/3 정도로 과감히 줄였으면 스토리의 완성도는 훨씬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고 예상해봅니다. 그리고, 참전 작품을 줄였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유 또 하나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스토리 진행의 템포가 너무 나쁘기 때문입니다. 각 인물들이 다들 한마디씩 끼어들다가 보니 대화가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것에 비해 너무 길게 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참전작이 너무 많다 보니 너무 늦게 등장하는 캐릭터/기체가 있는 것도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4X화에서 합류하는 유닛은 차라리 NPC로 등장해서 제세편에 등장할 것이라는 맛보기 역할만 살짝 하고 들어가는 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참전작 수가 많아서 좋은 점이라면 출격 유닛 전원을 여캐로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캐가 많다는 정도겠군요.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조연급이거나 지원형 유닛이 많아서 1회차에 여캐만으로 구성했다가는 난이도가 대폭 상승할 듯 하고, 2회차 이상에서라면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2회차에서 1회차에서 번 돈의 25%가 계승됩니다. 3회차는 50%, 4회차는 100%) 마구 개조해 주어서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코 이외에는 제대로 된 바스트 모핑 요원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측면 이외에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워낙 오랫동안 다듬어져 온 시스템인지라, 시스템 적으로 완성도는 높은 편입니다. 특히 UI적인 면에 있어서는 간만에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수준으로 변해있더군요. 전투 돌입 직전 화면에서 정신 커맨드를 쓸 수 있는 점이나, 정신 커맨드 사용시 다른 파일럿의 지원 커맨드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점등 거의 완성형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듬어지고 있더군요. 다만 부대표에서 정렬한 기준이 기억되지 않는다거나,(옵션에서 선택가능한 것을 게임 클리어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OTL) 맵을 축소해서 볼 때 맵 가장자리가 화면 가장자리로 자동으로 맞춰지지 않고 빈 공간이 보이는 등 사소한 점 몇가지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격하지 못한 파일럿들의 능력치를 어느 정도 올려줄 수 있는 서브오더 시스템도 좋았습니다. 예전 시리즈에서는 안 키우는 캐릭터라고 방치했는데 시나리오에 의해서 강제 출격해서 곤란한 경우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2회차 이상 플레이하실 거라면 격추수 관리를 잘 하셔서 전원 에이스를 노려보시는게.

PP를 사용해서 파일럿을 육성하는 시스템은 판단하기 좀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이게 캐릭터 게임이 아니라면 무조건 좋은 시스템인데, 슈로대는 캐릭터 게임이라서요. 무슨 소리인고 하니, 기존 시리즈에서는 캐릭터의 능력을 보고 '아 애니에서 이런 캐릭터니 이런 식으로 능력을 설정했구나'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유저의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해졌습니다. 실제로 저는 가능한 모든 파일럿에게 "연속행동"을 달아주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캐릭터 성격에 맞추어 설정해 줄 수도 있겠지만, SRPG인 이상 실용성을 우선하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애니에서는 다소 능력이 떨어지는 캐릭터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충분히 강하게 키울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고, 양쪽의 재미를 비교하면 역시 자신이 커스터마이즈하는 재미가 플레이 시에는 더 클 것입니다. 하지만, 애니를 먼저 본 사람들이 캐릭터 능력을 보고는 이야기하는 맛이 줄어든 것은 역시 아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서브파일럿의 정신 커맨드 수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기체 간의 밸런스를 고려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만, 굳이 너프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능력치를 다소 하향하고는 정신커맨드로 커버하게 해서 정신 커맨드를 좀 더 많이 쓰는 밸런스로 가는 쪽이 좀 더 신나는 플레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게임 난이도 측면에서는 광미디어로 이행한 이후의 슈로대들이 다들 그러했듯이 약간은 쉬운 편입니다. 단순 클리어만을 목표로 한다면요. 하지만 SR포인트라는 적절한 도전을 주어서 체감 난이도는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차적인 과제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은 간만에 드래곤 나이트4가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다만 적의 강함보다도 맵에서의 이동거리의 압박이 더 심한 편이라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리셋->리스타트가 쾌적한 편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리셋 노가다를 작정하고는 못 해도, 판단이 틀렸다 싶을 때에 리셋하는 정도는 크게 부담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확인은 못 했습니다만, 리셋 노가다를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 같아보입니다. 같은 상태면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는 듯 합니다. 다른 유닛을 움직이거나 해서 상태를 바꾸어놓으면 결과가 달라지고요.


이래저래 투덜되기는 했지만, 플레이할 게임이 쌓여있지 않다면 2회차 플레이에 돌입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풀개조하면 얼마나 난이도가 망가지나 궁금해서 주인공 풀개조하고는 몇스테이지 진행해 보았습니다만... 제세편을 플레이할지는 그 즈음에 나오는 다른 게임들에 의해서 결정될 것 같고, 아마도 저에게 슈로대는 몇년에 한번씩 플레이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다듬어졌는지를 보는 게임으로 남지 않을까 하고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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